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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을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자 나타난 겉표지 속 남자의 뒷모습을 보니 목구멍 아래부터 묵직한 것이 올라왔다. 타인의 슬픔에 뜨거워지고 공감하고 아파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값이라 생각했던 낭만적 시절을 겪은 나의 절망이 다시 올라왔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건은 2012년 밀양의 여름이었다. 7년이 넘도록 길어진 765kv 송전탑 건설 사건으로 끝내 고(故)이치우 어르신이 몸에 불을 붙였다. 이 사건 자체로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죽을 때가 다 된 노인이 목숨(?)을 잘 썼네, 어차피 죽을 노인 죽은 것이 대수인가?’ 이들은 고(故)이치우 어르신을 포함해 밀양의 모든 어르신을 말로 죽였다. 두 번째 사건은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 2022. 11. 16.
나는 그 상처를 덤덤히 보았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을 읽고 중학생 시절 생생히 떠오르는 섬뜩한 기억이 있다. 제법 덩치가 있는 한 남성 교사가 한 여학생에게 갖은 폭언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교과서로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위권의 성적으로 성실히 공부했던 반 친구다. 오랜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자신의 수업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교실 전체의 분위기는 얼어붙어 있었고, 하나같이 상기된 모습들이었다. 친구가 폭력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 교사를 말리지 못했다. 나 역시 그 현장을 덤덤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라본 그 친구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어 울면서도 무언가에 대해 저항하려는 듯 보였다. 폭력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고자 하는 그 친구에 대해 의아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세.. 2022. 10. 4.
거미도 거미줄에 걸리며 살아간다 -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마중글 거미도 자신이 만든 거미줄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끈끈이가 없는 방사선과 끈끈이가 있는 가로줄이 합쳐져 거미줄을 이룬다. 거미는 철저하게 방사선을 밟으며 살아간다. 거미가 방사선의 존재를 알고 있을 때 거미줄은 안전한 공간이다. 그러나 거미가 방사선의 존재를 모른 채 가로줄에 걸린다면 거미에게조차 거미줄은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없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서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류는 국가를 형성하고 사회라는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이루기 시작했다. 집단을 이룬 인류는 생태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군림하게 되었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니 인류는 내부에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아픔이 .. 2022. 9. 1.
인생책도 다다익선 -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를 읽고 나에게도 인생책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주로 학교 안에서 책을 읽었다. 다른 책들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모모』와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짐 엘리엇의 『전능자의 그늘』과 엔도 슈사쿠의 『침묵』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짐 엘리엇의 명언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라는 문장을 읽으며 전율과 충격을 받았고, 그 때 밑줄 친 이 문장은 내 인생의 문장으로 마음에 새겨졌다. 중학생이 된 나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부모님의 신앙으로 교회를 다녔다면, 이제는 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쌓아가는 신앙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 독서 카테고리는 자연스럽게 기독교 쪽으로 .. 2022. 8. 3.
호모 심비우스로서 ‘생태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위하여 -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를 읽고 산업혁명 이후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1.09도 상승한 현재, 지구는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8년 기상 관측 111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일어났으며, 2020년 역대 가장 길었던 54일간의 장마가 있었다. 태풍의 횟수와 세기도 점점 잦아지고 강해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인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내놓은 2021년 6차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추세대로 갈 경우 2040년 내로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정도의 기온 상승을 안일하게 바라본다면 큰 오산이다. 점점 더 심해지는 기후현상의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생물다양성 감소, 전염병, 식량난, 전쟁, 기후난민 등이 .. 2022. 7. 3.
낯선 세계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그리스도인이여 -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읽고 - 마중글: 성소수자들을 마주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안내서 낯선, 그러니까 낯선 지역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낯선 지역에 발을 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까? 아마 많은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공항, 터미널, 역 등 교통편은 물론이고 숙소, 관광지, 맛집, 쇼핑 등 낯선 곳을 누비기 위해 많은 정보를 모아본다. 이런 정보들을 한데 모아 우리에게 주어진 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안내서’다. ‘안내서’는 제작자의 느낀 점을 담은 기행문이 아니다. 오로지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이다. 이제 안내서를 의지해 이 낯선 곳에 발을 딛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두렵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모험을 시작한다. ‘안내서’는 여행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시설 이용에 관한 안내서, 강의에 관한 안내서, 제품 설명을 위한.. 2022.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