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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책

낯선 세계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그리스도인이여 -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읽고

by 조각모음_KIDY 2022. 6. 3.

- 마중글: 성소수자들을 마주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안내서

  낯선, 그러니까 낯선 지역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낯선 지역에 발을 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까? 아마 많은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공항, 터미널, 역 등 교통편은 물론이고 숙소, 관광지, 맛집, 쇼핑 등 낯선 곳을 누비기 위해 많은 정보를 모아본다. 이런 정보들을 한데 모아 우리에게 주어진 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안내서’다.

  ‘안내서’는 제작자의 느낀 점을 담은 기행문이 아니다. 오로지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이다. 이제 안내서를 의지해 이 낯선 곳에 발을 딛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두렵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모험을 시작한다.

  ‘안내서’는 여행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시설 이용에 관한 안내서, 강의에 관한 안내서, 제품 설명을 위한 안내서, 내가 즐겨 듣는 음악 장르에 대한 안내서 등 아마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에는 안내서가 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책도 ‘안내서’다.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성소수자 교인을 위한 목회 및 선교 안내서 - 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책은 우리를 ‘성소수자 교인’, ‘퀴어 그리스도인’이라는 낯선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준다.

- 성서 낯설게 읽기

  성서는 어떤 책일까?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토머스 머튼의 정의에 동의한다.

이렇게 구분짓는 파괴적인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세계)은 결코 성서의 메시지가 아니다. 성서의 메시지는 분명히 일치와 화해의 메세지이다.*
토마스 머튼, 구원의 빛, 오무수 옮김, (서울: 성서와함께, 2002), 21

  성서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안내서는 화해와 일치 그리고 사랑과 평화를 향해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일까? 성서가 말하고 있는 것이 ‘일치’와 ‘화해’라면,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포용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성서의 메시지라면, 이렇게 질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일치와 화해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일까?’

  3장에서 성서를 보는 관점에 대해 다루는 것 역시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의 시선이 어떤 곳을 향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함이다. 특별히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 1942~2015)*의 저서들을 인용하여 성서에 관한 관점을 다루고 있다.

미국의 성공회 신학자이자 신약학자. 마커스 보그는 기독교의 다양한 측면들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나 일반사람에게 소개하는 여러 저서들을 쓴 그리스도교의 친절한 안내자 중 한 명이다. 그리스도교 특유의 언어들에 대해 서술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그리스도교의 여러 신앙의 형태를 다루는 『기독교의 심장』, 성서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선을 제공해주는 『성서 제대로 다시 읽기』 등의 저서가 있다.

  마커스 보그는 과거의 렌즈가 아닌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성서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새로운 렌즈라는 것은 성서를 신의 권위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만들어 진 것, 성서를 통해 군주처럼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하는 대화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기독교의 심장』에서 현재 교회의 가장 큰 갈등으로 여성 안수, 성소수자, 기독교 배타주의 말한다. 세 가지 문제들은 과거의 시선으로 성서를 바라볼 때, 용납되지 않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되고, 새로운 세상에 머무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마커스 보그가 제시하는 모델들은 단순히 성서를 새롭게 본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런 문제들을 통해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길로 안내받게 된다. 성소수자를 비롯해 너무나 낯설게 여겨지던 이들을 통해 새로운 길로 안내를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못된 성서의 해석과 시선으로 세워진 경계 위에서 비로소 서로에게 이르는 길을 안내받는 것은 아닐까?

 

- 교회 모임 낯설게 바라보기

  한 사람의 세계는 참 좁다.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육체가 허락한 경험들과 물리적 한계를 통해 맛본 체험들로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경험과 체험으로 세워진 울타리를 세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세워놓은 울타리로 다가오는 존재가 있다. 특히, 울타리로 겹겹이 세워진 교회의 울타리로 낯선 존재가 찾아오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 4장에서는 성소수자와의 만남에 대해 다룬다.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안전한 공간’, 즉 ‘내가 나로서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교회가 자리매김하기 위한 여러 안내가 나온다. 사회에서 개방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울타리 안에서 공개한 상황이다. 소수자의 커밍아웃은 곧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사망 선고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용기와 자기 개방은 큰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이 심리적, 정신적, 물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 내에서 실제로 이들을 대하는 환경과 구조, 모임의 형태 등을 논의하게 된다. 특히 ‘안전한 공간’은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4장에서 ‘안전한 공간’과 더불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경청’이다.

  ‘경청’은 단순히 상대방의 이야기, 대화를 나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품어주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경청할 때는 마음을 다해 들어야 한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 판단이나 평가는 잠시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상대방의 관점에서 들어주어야 한다.

  당신 앞에 머무는 낯선 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내어놓고 공감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가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 매듭글 –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제안서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성소수자를 위한 교회 공동체들을 위해 만든 안내서지만, 동시에 약자와 소수자들을 아우르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여성, 장애인, 난민, 이주민, 도시 빈민 등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낯선 이들을 향해 다가가자는 ‘제안’도 함께 담겨있다.

  안내서는 또 다른 이름의 ‘제안서’이기도 하다. ‘제안서’는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일을 진행할지를,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요청을 위한 양식이다. 교회의 여러 활동에서 소수자들을 마주할 때 나름의 발전적 방향과 개선점을 공동체에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한국 교회를 향한 제안서이기도 하다.

  이 제안서를 붙잡고 낯선 세계가, 낯선 이가 다가올 때, 우리를 돌아보기 원한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방향, 혐오와 차별의 울타리를 거두고 있을까? 선의의 방관자가 아닌, 성소수자에게도 신뢰받을 수 있는 앨라이가 될 수 있는가? 안내서가 제안하는 것처럼 낯선 이를 향한 환대와 경청 그리고 ‘낯선’ 이란 단어조차 덮어버릴 사랑의 넉넉함이 있는가?

 

키디 / 책 모으는 걸 좋아하는 사람. 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교회 전도사다. 자신만의 공간에 단상을 남기고 감상을 나누며, 스스로의 이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선교하는 수도 공동체 『더불어 홀로』에 몸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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