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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책

성서를 향한 짧은 질문의 여정 - 『구원의 빛: 성서를 펼치며』를 읽고

by 조각모음_KIDY 2020. 5. 13.

- 마중글

  '성서란 무엇인가?' 사실 이 어려운 질문은 성서를 많이 읽은 사람에게 유효한 질문이다. 부끄럽지만 그만큼 성서를 읽지 않는 필자에게 굉장히 사치스러운 질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질문해봤다.

  '성서는 왜 어려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적절한 것은 성서는 그 어떤 수면제보다 훌륭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읽을 때마다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지만 그걸 차치해두더라도 성서를 읽었을 때 ‘재미없다’, ‘너무 어렵다’, ‘이게 사실이냐’라는 반응들이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세상을 살아갈 때 평생의 동반자가 될 성서를 이렇게 대해야 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 내게 다시 한번 솔직하게 질문해본다.

  '성서는 왜 중요할까?' 미국의 수도사이자 영성가 토마스 머튼이 지은 『구원의 빛-성서를 펼치며』를 읽으면서 필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질문이다. 성서라는 광대한 세계를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이에게 용기를, 혼란스럽고 어지럽기까지 한 성서의 여정에서 이 책은 나침반이 되어준다.

 

 

『구원의 빛: 성서를 펼치며』, 토마스 머튼, 오무수 옮김, 성서와 함께.

 

- 성서를 바라보는 시선
  필자는 신학생의 신분으로 성서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본문의 배경과 맥락 등에 주목하고, 여러 가지 툴(여러 비평방법론 등)을 이용해 성서를 여러 방향에서 관찰한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성서를 볼 때, 그냥 성서를 읽을 때와 사뭇 달라보이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이것을 ‘정답’으로 단정 짓는다. 필자도 성서를 볼 때 성서만 읽지 않는다. 수많은 학자와 목회자들이 만들어낸 인식과 이성 그리고 지식과 상식의 렌즈로 성서를 들여다본다. 훌륭한 성서학은 성서를 진지하게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서에 대한 ‘예비 지식’을 얻는 것은 한층 깊은 차원에서 인격적인 참여와 관계 맺음 속에서 성장하는 생동력 있는 통찰(p.121)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렌즈로 성서를 들여다볼 때, 이해하기 쉽게 성서 본문들을 걷어내고, 해체하고, 분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삶의 열매로 맺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성서를 통해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체험 또한 경험할 수 없다. 어느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빛을 던져주지 못하는 메마르고 초점 잃은 탐구에 대해 이렇게 과학적 욕심을 부리는 것은 성서 체험의 실존적 현실감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둔하게 한다.

  그래서 머튼은 ‘포용적 성서읽기’를 제시한다. 머튼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틀을 통해 성서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성서를 받아들이고 내 삶의 순간에 일치시키는 것을 강조한다. 

 

오히려 우리는 실제적으로 성서의 매우 한정된 부분만을 포용하는 편협한 해석 속으로 성서를 밀어 넣으려는 경향을 많이 갖고 있다. ...(중략)인생 자체가 다원적이고, 역설적이고, 상호갈등적인 성서의 요소들 속에 뛰어들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배척하지 않고 때때로 어리둥절케 할 때에도 그것들을 그대로 포용하고 받아들여 일치를 찾는 성숙한 신앙이 져야 할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선입견의 틀 속으로 성서를 제한시키려는 그 어떤 결심을 품고서는 결코 성서를 펼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이성과 지식 그리고 인식과 상식의 시선으로 성서를 바라보면 무엇이 납득이 될까?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도 성서 본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포용의 자세. 단호한 머튼의 태도에 마음의 찔림을 느끼며 잠시 망설였지만, 다시 한번 성서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포용적 성서 읽기를 통해 인간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성서를 대하게 된다. 열린 마음으로 성서를 대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자신을 이끌고가는 성서의 힘을 보게 될 것이다. 성서에 빠져든다는 것은 버티고, 따지며, 저항하다가 자신이 틀렸을 경우 마지막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머튼은 성서를 읽는 것을 ‘투쟁’이라고 말하며 이 과정에 머물 때, 비로소 성서가 인간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성서는 인간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 성서의 외침에 귀 기울이며
  성서의 목소리는 그리스도인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그 목소리는 모두의 것이다. 특히 약자의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p.88). 약자를 향한 불의가 사라지고, 억눌림 받은 이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최후의 심판으로 나아가는 것을 성서는 말하고 있다. 성서의 메시지는 분열과 미움으로 얼룩진 인간세계의 혼돈 속에 그 꼴을 뒤바꾸는 힘의 메시지가 도래했다는 것이요, 이를 믿는 사람은 이 땅에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사랑'을 자신 안에서 체험하게 된다. 자신을 내어주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 이타적인 관계성과 관심을 지니며 살아갈 때 인간이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 그리스도 예수의 삶을 단순히 이해하고 그가 어떻게 이 세상에 ‘사랑’을 베풀었는지 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살아가며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의미를 발견하는데 의의가 있다. 성서는 끊임없이 이 부분을 말하고 있다. 

  성서를 통해 새로 태어난 사람은 사랑과 일치, 평화를 가져다주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성서를 통해 이뤄지는 ‘체험’은 이 땅에 화해와 평화를 이뤄가는 역할을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머튼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타자를 통해 온전한 자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자기발견(개인)과 타자와의 관계(공동체)적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차원이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면, 당신 자신의 자유와 성향을 초월할 수 있다. 그 순간 당신의 마음속 어떤 근원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사랑에 대해 친밀하고 인격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의 근원 속으로 꿰뚫어 들어감으로써 마침내 당신은 참된 자아(self)를 발견하게 된다. 자아를 향한 여정은 타자와 분리된 개인적인 경험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만남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살아간다.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시다. 자기를 비워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이나 공동체로서 인간과 자신을 동일했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믿으라, 그러면 이해하게 되리라.”

  위 문장을 읽었다면 159페이지라는 짧지만 긴 여정을 매듭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발걸음을 옮겼던 순간으로 돌아가 볼 것을 권면한다. 다시 책을 펼쳐 처음으로 돌아가면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성서는 어떤 책인가?” 

 

  토마스 머튼은 성서를 읽음으로써 우리가 볼 수 있는 결정적인 메시지를 ‘일치와 화해의 메시지’ 라는 것에 주목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편견과 갈등, 증오와 분열 그리고 욕심이 있던 곳에 사랑과 일치, 평화와 이해 그리고 자유를 가져다주는 힘(p.31)으로 볼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일치와 화해의 메시지’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 메시지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지금 이 시대는 성서를 통해 구분 짓고, 혐오하고, 외면하는 틀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할 이들은 분파주의, 민족주의, 권력과 정치 등 인간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욕망의 틀로서 성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는 이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는 동안 인간이 놓치고 있는 진리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기 위해 성서 안에 자리한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한 이해, 그 요소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태도로 성서를 바라볼 때, 단순히 문학 내지 글로 성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움트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로 성서를 경험할 수 있다. 성서를 통해 경험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사적 이익이 체계화된 집단 사회구조 속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등에 지고 세계를 혁명적으로 해방하는 일에 동참할 것을 선택해야 한다. 자유로 우릴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이 어두운 세상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 나가야 한다. 인간으로서 성서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마주할 때 혼란스럽고 당황하는 것이. 그래서 성서를 읽어나가는 과정은 버겁고, 힘겹기까지 하다. 진정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품고 믿음으로 나아갈 용기. 그 용기가 필요한 시기다.

 

 

 

키디 / 선교하는 수도 공동체 『더불어 홀로』에 몸담고 있다. 책 모으는 걸 좋아하는 사람. 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교회 전도사다. 자신만의 공간에 단상을 남기고 감상을 나누며, 스스로의 이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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