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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먹는 말씀이 맛있다?

골라먹는 말씀이 맛있다? - 십일조(1)

by 조각모음_KIDY 2020. 6. 9.

  나는 고등학교 시절 기독교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경배와 찬양 동아리여서 그런지 동아리 친구들은 각 교회에서 존재감이 뚜렷했다. 찬양 인도, 학생회 임원, 몸 찬양, 찬양팀 보컬 등 동아리 친구들과 나는 교회에서 열심이었고 교인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았다. 시간이 지나 그렇게 뜨거운 신앙생활을 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골라 먹는 말씀이 맛있다? - 십일조편’은 교회를 떠난 친구들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려 한다.

 

  친구 A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 뒤, 서울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고 있는 대형교회를 다녔다.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그가 어느 날 내게 질문했다. “십일조는 꼭 해야 하는 거야? 하나님은 십일조를 하는 사람에게만 축복하시는 거야?” 자초지종을 들어봤더니 담임목사의 시리즈 설교가 십일조에 관한 것이었는데, 설교내용이 불편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묻자 그는 “십일조를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고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들어온 복도 발로 차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십일조를 해야 한다.”라고 요약했다.

 

 

 

 

 

 

  A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중이었고, 가정형편은 좋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지금도 학자금을 갚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설교를 교회에서 시리즈로 듣게 된 것이다. 일주일을 보내고 주일 말씀으로 힘을 얻어갈 그 순간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짐작해본다.

 

  사실 A가 들은 설교내용은 한국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이른바 ‘십일조 망언’이라 불리는 설교들 말이다. (굳이 설교내용을 공유하지 않겠다.) ‘십일조 망언’ 류의 설교들은 십일조를 복의 근원으로 설명한다. 이를 위해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는데, 그 중 단골 메뉴는 창세기 14:20절이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자발적으로 십분의 일의 제물을 바친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리고 여지없이 따라오는 성경 구절이 창15:1이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개역개정)

 

  십일조 관련 설교에서 창 15:1은 두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이 후에’이고, 다른 하나는 ‘지극히 큰 상급’이다. 이 두 가지 포인트는 ‘십일조를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다.’라는 신앙공식을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이후에’라는 표현에 집중해보려 한다. ‘이후에’를 이해하기 위해 앞 장의 사건을 요약해보자.

 

⓵ 아브람의 조카 롯은 번영을 위해 소돔으로 떠남. 아브람은 헤브론에 남기로 함.

⓶ 동방의 왕들이 가나안 지역을 침략함. 대부분 도시는 동방의 왕들에게 복종함.

⓷ 12년 후 가나안 지역에서 동방의 왕들에게 반기를 들음.

⓸ 동방의 왕들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함.

⓹ 반란 진압과정에서 롯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감.

⓺ 헤브론에서 잠자코 있던 아브람이 개입하게 됨.

⓻ 아브람이 사병을 이끌고 가서 동방 왕들을 무찔렀다.

⓼ 돌아오는 길에 살렘 근처에서 멜기세덱(제사장, 왕)을 만난다.

⓽ 멜기세덱이 가장 높으신 하나님(엘 엘론)의 이름으로 축복해주었다.

⓾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전리품 십 분의 일을 주었다.

⑪ 아브람은 소돔왕에게 함께 싸운 자들과 함께 돌아온 소년(포로)의 몫을 제외하고 실오라기 하나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성서 기자는 위 사건을 통해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해준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람의 모습을 통해 야웨가 아브람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야웨가 지지하는 아브람의 사람 된 모습이다.

 

 

 

 

 

 

  아브람의 개입 전, 사해 주변 도시들은 동방 왕들에게 두 번이나 패했다. 그런데 아브람은 318명의 적은 군사로 동방 왕들을 쫓아냈다. 고대 근동 시대에서 전쟁은 신의 역량을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신은 더욱 능력이 있고 강력한 신으로 이해됐다. 이와 같은 관념은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브람은 들으시오. 그대는, 원수들을 그대의 손에 넘겨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은 찬양하시오”(창 14:20, 새번역)

 

  야웨의 지지를 받는 아브람은 전쟁 후 고대근동시대의 관념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전쟁 후 전쟁영웅으로서 군림하지 않았다. 전쟁의 승자로서 취하는 폭력적 착취를 거부한다. 그 예로 아브람은 자신의 도움을 받은 소돔왕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것이니 소년들과 나와 함께 싸운 자들의 몫은 따로 내놓아서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야웨가 지지하고 있는 아브람은 비극적인 사건을 평화적으로 마무리하는 사람 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전혀 다른 말씀으로 선포된다. 먼저 ‘이후에’라는 표현을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전리품 십 분의 일을 준 사건으로 축소한다. 성서가 전달하려했던 아브람의 사람 된 모습은 사라진다. 그리고 아브람은 십일조를 잘해 복 받은 사람으로 둔갑되어 있었다. 창15장은 12:1-3의 언약이 갱신되면서 ‘지극히 큰 상급’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자손’(15:3), 광활한 땅(15:18-21)에 대해 약속하고 있다. ‘이후에’를 축소하여 15장의 언약을 십일조에 대한 보상쯤으로 여기는 해석은 성서 왜곡이다.

 

  다시 친구 A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만약 설교를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십일조를 해야만 한다고 선포하는 설교가 아닌 야웨의 지지를 받은 아브람의 사람됨에 대해서 들었다면 지금의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해보려고 한다. 다음 글은 신명기와 말라기를 바탕으로 ‘성서에서 말하는 십일조’를 주제로 한다.

 

교회아저씨 / 탈(脫)교회를 꿈꾸는 전도사. 제 1성서 공부를 좋아하는 신학생. 요즘 넷플릭스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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