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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먹는 말씀이 맛있다?

골라먹는 말씀이 맛있다? - 차별금지법(1)

by 조각모음_KIDY 2020. 10. 15.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입법하려 했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과업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국회에서 13년 동안 6번 발의되고 폐기되는 바람에 차별금지법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동안 여당은 차별금지법 발의로 인해 떠안아야 할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대표 발의를 하지 않았다.

 

  2020년 정의당 장혜영 의원 주도로 비례대표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차별금지법 법안이 다시 발의되었다. 마침 여당은 지난 총선에서 180표 이상의 성과를 낸 거대 여당으로 변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무엇 때문인지 망설이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에 따르면 법안 발의를 위해 개별적으로 민주당 의원들에게 연락했을 때 불필요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참여할 수 없다고 하여 아쉬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해봐도 알 수 있다.

 

온누리 교회 이제훈 목사 차별금지법 통과하면...”(유튜브)

통합당 개신교 의원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보호법”(미래통합당 기독인회 회장 이채익 의원)

차별금지법 목소리 만만치 않았다.”(국민일보 78)

7월 5일 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관련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차별금지법은 보수기독교인들을 하나로 응집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특히 보수기독교인들이 그동안 국민의힘에 보낸 지지와 성원을 생각하면 차별금지법 발의로 인해 발생할 정치적 부담은 거대여당에게 부담이었을 것이다.

 

  정치적인 색을 드러내지 않았던 교회들도 차별금지법은 하나님이 뜻이 아니라고 강단에서 설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사실은 차별금지법을 바라보는 시각이 하나같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서를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교단 구분 없이 약 100여 개의 교회에서 최근 차별금지법 관련 설교를 찾아보았다. 대부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설교였다. 설교에서 사용된 본문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창세기 19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레위기 18:22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된다.

레위기 20:13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이므로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로마서 1:26-27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6:9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디모데전서 1:10 남색하는 자와

 

단연 인기 있는 본문은 창세기 19(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이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전통적 이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단어가 있다. ‘sodomy’(남색)‘Sodomite’(남색 하는 사람) . 이 단어들을 사용할 때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동성애로 인해 도시가 멸망하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덕분에 동성애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이자 세상에 멸망을 가져오는 죄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소돔과 고모라에 만연한 죄가 동성애였을까? 동성애를 했기 때문에 도시가 멸망하게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성서 해석은 잘못되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보며 동성애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 것은 명백히 성서 편식이다. 성서 편식으로 인해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전선을 만들었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어기는 불순종을 범하게 된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편식 없이 제대로 살펴보자.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시작되는 19장은 롯이 나그네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나그네를 맞이하는 장면은 앞 장인 18장에서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맞이하는 장면과 교차한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창세기 18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맞이한 이야기와 비교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하여 정성을 다해 대접한다. 고운 밀가루로 빵도 굽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요리했다. 롯도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하여 무교병을 구워 대접하였다. 아브라함과 롯은 율법에 기록된 나그네 환대법을 잘 지켰다. 문제는 아브라함과 롯이 같은 공간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성서는 앞서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13장에서 다루고 있다. 가축이 늘어나면서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서로 다툼이 일어났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서로 다투지 말자며 그 유명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9)라며 선택권을 롯에게 주었다. 롯은 소돔을 선택했다. 성서는 롯이 물이 넉넉하여 주님의 동산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아 보여서 소돔을 선택했다고 밝히며 동시에 소돔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다. (13:10) 이미 소돔은 주님을 거슬러 온갖 죄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13:13)

 

  그렇다면 소돔은 무슨 죄를 어떻게 짓고 있었던 것일까? 그 내용은 19장에 기록되어 있다. 소돔은 롯이 반할 만큼 풍요로운 땅이었다. 풍요로운 만큼 나그네를 환대하며 가진 것을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소돔은 나그네를 향한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롯의 집에 들이닥친 소돔 주민들은 나그네를 자신들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소돔의 주민들은 롯에게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겠소(19:5, 새번역)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상관이라고 번역한 야다는 성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상상해보면 소돔 남성들이 롯의 집에 방문한 나그네(남성)에게 성관계를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동성애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장면은 단순히 남성과 남성의 성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나그네를 향한 성폭력이다.

 

  롯은 소돔의 주민들을 말렸다. 여보게들, 제발 이러지 말게, 이건 악한 짓일세(19:7, 새번역)

심지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신의 딸을 내놓으면서 롯은 나그네를 지키려 했다. 오늘날 우리의 이해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관념으로 딸은 귀중한 재산이다. 롯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그네를 지키고자 귀중한 재산을 내놓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그네를 지키겠다는 롯의 의중이 잘 드러난다.

 

  롯의 적극적으로 나그네를 지키려 하자 소돔 주민들은 롯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도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 우리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고 하는구나. 어디, 그들보다 당신이 먼저 혼 좀 나보시오하면서, 롯에게 달려들고 밀치고, 대문을 부수려고 하였다.’(19:9, 새번역)

 

 

주목해야 할 점은 소돔 주민 중에 나그네를 향한 폭력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성서는 창세기 19장을 통해 나그네를 향한 폭력이 일상화된 소돔을 고발하며, 소돔의 멸망 이유를 일상화된 나그네를 향한 폭력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에스겔 역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16:49, 새번역) 라고 밝히며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장을 근거로 동성애를 죄악시하고 차별과 혐오 전선을 만드는 행위는 반성서적 행위이다. 나아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사회적 나그네로 살아가는 소수자들을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반대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아직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혹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면 분명하게 말해주자. 하나님께서는 차별과 혐오 전선을 만드는 쪼잔한 신이 아님을!!

 

교회아저씨 / 탈(脫)교회를 꿈꾸는 전도사. 제 1성서 공부를 좋아하는 신학생. 요즘 넷플릭스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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