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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먹는 말씀이 맛있다?

골라먹는 말씀이 맛있다? - 주일성수

by 조각모음_KIDY 2020. 5. 14.

  12년간 교회에 몸담아 오면서 성경 말씀을 차별하고 있는 지금 교회의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119:103) 라고 말했던 시편화자가 편식을 해서 말씀이 달다고 고백하지는 않았을 텐데··· 한국교회는 좋아하는 말씀을 골라 제 입맛대로 맞추어 가공 후 편식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필자는 말씀을 골라먹으며 기형적으로 성장한 교회와 우리의 신앙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첫 글로 교회에서 절대 끊어내지 못하는 주일성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 주일성수편

 

  하나님의 말씀을 가공한 후 편식한 한국교회의 민낯은 코로나 19로 인해 더욱 극명히 나타났다. 코로나를 하나님의 심판이라 하며 '우한 코로나', '대구 코로나', '신천지 코로나' 등의 혐오를 조장하는 표현을 설교 중에 가감 없이 쏟아 내었고, 우한시에서 일어난 기독교 박해가 심판의 이유라고 설교했다.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안하면서 예배와 소모임을 제한하자 일부 교회는 종교탄압이라고 반발했다.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하기 때문에 정부의 예배통제는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교회가 사회적거리두기를 두고 종교탄압이라고 한 까닭은 단순하다. 한국교회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주일 성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먼저 주일성수를 생각해보자. 주일성수와 관련해 교회에서 어떻게 배워왔는가? 첫 번째 근거가 되는 말씀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이다.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피력할 수 있는 좋은 성경구절이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에게 '전지전능한 창조주'는 어색하지 않다.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창세기 1장의 구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는 반복어구가 많이 나온다. 독자들 입장에서 반복 어구는 강조의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피력하기 위한 강조 어구는 '창조사역에 대한 이야기'(하나님이 이르시되 1:3,6,9,14,20,24), '승낙을 의미하는 상용구'(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1:4,12,18,21,25,27) 등이 있다. 절정은 안식일에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시고 그 날을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셨다.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신 안식일은 피조물의 입장에서 평생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날이다.

 

  문제는 첫 번째 창조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바라본다는데 있다. 많은 교회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을 따라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어렸을 때 교회에서 이와 같은 내용으로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혹시 교회에서 배운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 의문이 들지 않았는가?

 

  성서비평을 하며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생기는 의문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순간을 누가 기록했을까?", "누가 썼기에 하나님의 심정까지 다 알고 있었을까?", "하나님보다 더 큰 신이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 전제되는 것인가?" 첫 번째 창조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이를 역사적으로 바라 볼 경우 누가 이 이야기를 기록했는지 설명해내야 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무작정 믿으라고만 말한다. 첫 번째 창조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피력하는 첫 번째 창조 이야기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사실을 그들이 알았으면 세상이 조금은 바뀌었을까?

 

  두 번째로 '주일성수'의 근거가 되는 구절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에 등장하는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20:8)에서 'זכר'(자카르/기억하다)는 부정사 절대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강조적인 명령으로 생각할 수 있다. 출애굽기 본문과 다르게 신명기에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첨언을 덧붙였다.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은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한 것이다.'(신5:12) 에서 'שמר'(샤마르/지키다) 역시 부정사 절대형으로 사용되었다. 즉, 십계명에 등장하는 안식일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킨 구원의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식일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이다. 안식일(שבת)의 의미는 '그만두다. 멈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창조 이야기에서 안식하신 하나님은 창조사역을 멈추고 창조의 완성을 계시하시는 것이며, 십계명에 등장하는 안식일은 쉼 없이 노동하던 노예들에게 일상적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하나님임을 계시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경의 맥락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안식일을 통해 만나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안식일을 통해 지금 여기 자기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안식일 이해를 잘 살펴 볼 수 있는 예화가 있다. 이 예화는 주일성수와 관련한 설교에 단골로 등장하는데, 바로 아이젠하워(Dwight David "Ike" Eisenhower/ 34대 미국 대통령) 대통령 이야기다.[각주:1]  2차 세계대전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가 한국교회에서는 주일성수의 아이콘이다. 가난한 집에서 신앙 깊은 가정교육을 받아 주일 성수를 했더니 전쟁 영웅이 되었고, 마침내 미국 대통령까지 되었다. 설교에서 아이젠하워 성공 이야기의 방점은 주일 성수에 찍혀 있다. 주일 성수를 잘해서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아이젠하워가 정말 이런 복을 받으려 교회를 다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아이젠하워와 같은 복을 받기 위해서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고 선포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만약 아이젠하워와 같은 복을 받기 위한 주일성수라고 한다면, 오늘날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은 전쟁 영웅 혹은 대통령과 같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통해 자기계시를 하고 계신다는 의미인가? 24시간 생산과 소비가 반복되는 피로사회에서 하나님은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을 바라시는 창조주이신가?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왜 명령형인지 되새겨봐야 한다. 출애굽기 16장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이집트 노예들에게 6일간 일하고 7일째 쉬라고 했을 때 그들은 7일 째 쉬지 않았다. 430년간의 노예생활이 그들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노예처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유일한 줄 알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은 그들도 쉼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창조주의 명령이다!! 너희들도 쉼을 누려라."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속출하면서 세계는 잠시 멈추었다. 사람들의 이동이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들면서 생산이 줄어들었다. 경제적으로는 위기를 맞았다며 언론에서는 코로나 19 이후 경제문제에 대한 뉴스를 쏟아냈다. 코로나 19 이전의 삶, 즉 쉼 없이 생산과 소비에 집중한 피로사회를 회복해야한다는 전제가 깔린 뉴스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온 세상이 하나님이 주신 안식과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 알게 된다.

 

코로나 19 이후 우리는 분명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삶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키워드는 안식이다. 온 세상이 안식하는 삶을 지향하며, 서로의 안식을 축하하고 지지하는 교회가 세워지길!!

 

 

교회아저씨 / 탈(脫)교회를 꿈꾸는 전도사. 제 1성서 공부를 좋아하는 신학생요즘 넷플릭스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인.

 


 

  1. 내용이 궁금하면 “아이젠하워-주일성수와 기도의 대통령”(이채윤 지음, 2010)을 읽어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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