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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디의 끄적끄적

비통한 자들을 위한 광장은 어디에?

by 조각모음_KIDY 2020. 5. 13.

 

 

태극기 둘러싸인 세월호 가족들.. "펑펑 울었다"

보수단체의 대규모 집회로 광화문 일대가 가득찼던 지난 3일. 광장에는 외딴 섬처럼 덩그러니 놓인 곳이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 기름과 물마냥 섞이지 못한 채 고립된 세월호 추모 공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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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소설 ‘광장’ 1961년판 저자 서문

 

- 3년 전, 그리고 지금
  3년 전. 어둠을 걷어내고 희망의 빛을 뿜어내던 수많은 촛불이 광장에 모여들었던 순간이 3년 전이었다. 광장의 정면에 자리하고 있는 대문의 말처럼 빛나는 세상이 다가옴을 예견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선을 돌려 광장을 바라보면 빛은 온데간데없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풍경만이 광장에 남게 되었다. 민주주의라는 울타리로 둘러친 광장에는 혐오와 폭력의 물결이 가득하다. 현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빨갱이라는 외침은 기본이요, 거친 비속어들이 광화문과 청와대를 향해 울려 퍼지고 있다. 외침 뿐이겠는가?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폭력에 그들의 안전을 위해 자리한 젊은이들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기도 한다. 이들의 외침과 폭력에 맞서 또 다른 광장에는 자신들의 조국(祖國)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조국(曺國)들이 나와 그를 수호하고 있다. 지금이 기회라며, 지금이 적기라며, 지금이 아니면 다신 이 순간이 오지않을거라며 벼르고 있는 이들이 서초동에 몰려들고 있다.

  광장은 '네 편, '내 편'의 목소리를 대신 외쳐주느라 광기에 휩싸여있다. 광장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무엇을 위한 목소리인가? 거칠게 요약하자면 '개인'을 위한 외침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서초나 광화문이나 공적인 삶을 위해 외치는 목소리를 거세해버린 채 자신들의 이익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더 많이 모이느냐라는 규모의 대결로 번지고 있어 이젠 무엇을 위해 모이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 목소리에 답해야 할 정부는 검찰개혁을 단행한 후, 남아있는 '나중에' 와 '다음에'를 시행할 모양인가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이다.

 

​- 하얀 손수건의 광장, 노란 리본의 광장

  오늘날 광장의 역할은 수많은 목소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광장에서 울려 퍼져야 하는 목소리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목소리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확성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주목하여 수많은 이들이 귀 기울여 주는 것, 이것이 광장의 역할이다. 이는 한국의 광장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광장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레돈도(Jorge Rafael Videla Redondo)는 악명 높은 독재자다. 그의 통치 때 일어난 끔찍한 사건인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은 1976년 3월부터 1979년 9월에 일어났다. 이 탄압 속에 수많은 영혼이 사라졌는데 그 수는 30,000명에 달한다. 그 누구도 군부 정권을 향해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던 시절. 그러나 1977년 5월 초 아르헨티나 독립의 상징 5월 광장에 모여든 14명의 어머니는 “내 자녀들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절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개인 차원의 탐문과 수색을 통해 자식들을 찾아 헤맸으나 관계 부서로부터 늘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똑같은 답변을 들어야 했다. 광장으로 모인 어머니들은 머리에 흰 손수건을 두르고 목에는 실종된 자식들의 사진이 담긴 패를 걸고 자녀를 찾기 위한 저항을 시작했다. 어머니들은 끊임없이 군부에 눈물로 호소하며 자식들의 행방을 물었지만 도리어 돌아오는 것은 미치광이들이라고 조롱받았을 뿐이다. 군부가 물러나도 민선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어머니들은 계속해서 말하였다. 자녀들을 되살려달라고. 그리고 또 다른 메시지 '국가의 폭력'을 잊지 말자고. 어머니들이 할머니가 되어 이 절규는 멈췄지만, 국가폭력에 맞선 저항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 비통한 자들을 위한 광장은 언제? 그리고 어디에?

  광화문 광장에 가본 적이 있는가? 광장에는 노란색 리본이 가득하다. 건물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리본 물결을 볼 때마다 그 날이 떠오른다. 광장의 노란 리본은 5월 광장 어머니회의 흰 스카프처럼 국가폭력에 의해 사라진 이들을 위로하는 상징이 되었다. 광화문 광장에는 여전히 국가폭력에 의해 해결되지 않은, 그리고 왜 자녀가 죽었는지 모르는 의문을 풀기 위해 차가운 땅바닥과 함께하고 계신 분들이 계신다. 그 날의 아픔을 아직도 품고 있는 그 분들의 심정을 지금도 공감해 드릴 수 없다. 그 슬픔을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하는지, 어떻게 공감해드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죄스러운 심정에 머물게 된다. 언제까지 차가운 봄을 이겨내야 하는가? 따뜻한 봄이 되는 순간은 언제 올까? ​따뜻한 봄을 맞이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이 오늘도 거리에서 머물고 있다.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와 서울톨게이트 위에서, 인천 부평공장 앞에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강남역 사거리 철탑에서 차가운 바람보다 더 시린 사람들의 시선을 꿋꿋이 견디며 거리에 서 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광장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을 위해 광장에서 외쳐야 할 이는 어디에 있는가? 이데올로기의 경계에서 움직이는 권력의 저울질은 이제 그만 내려놓고 비통한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할 때다. 그들에게 광장을 돌려줘야 할 때 다.

 

 

키디 / 선교하는 수도 공동체 『더불어 홀로』에 몸담고 있다. 책 모으는 걸 좋아하는 사람. 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교회 전도사다. 자신만의 공간에 단상을 남기고 감상을 나누며, 스스로의 이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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