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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디의 끄적끄적

교회에서 “응, 아니야”를 외치는 나와 당신에게

by 조각모음_KIDY 2020. 10. 9.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서 기획한 『2030이 한국교회에게』라는 코너의 한 부분을 맡아 적어보았습니다.

 

 

 

- 우리에겐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공격받고 있다. 이젠 교회가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광화문에서 끊임없이 정부를 비난하며 극우 세력을 모으는 목사들, 혐오와 배제의 칼을 들고 불신과 분열, 대립을 야기시키는 교단들, 가짜뉴스를 만들어 수많은 교인에게 배포시키는 극우 기독교 유튜버 등에 의해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비판받는 것을 피하지 못 할 것이다.

 

의미 있는 개혁을 하는 것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요즘, 한국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때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환영과 환대를 받는 세상은 이제 도래하지 못 할 수 있다. 당장 교회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기를 기다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리석은 선택, 잘못된 결정, 미성숙한 자세로부터 회개가 필요한 시기다. 그 시기는 언제 도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뉴스앤조이>를 통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몇몇 인터넷 언론이나 가짜 뉴스를 배포하는 이들의 소식에 흔들리지 않고, 교회·학교·가족 등의 그룹에서 잘못된 이야기들을 바로잡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생각을 빌리지 않더라도 교회와 신앙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고, 교회를 향해서는 애증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로 끝이라면, 아마 이런 대화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여전히 교회를 다니고 있다면 질문해 보고 싶다.

당신은 왜 교회를 다니고 있는가? 당신과 나는 왜, 아직도 교회에 머물고 있단 말인가?

 

 

당신과 나는 교회의 문제점에 서스름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잘 알고 있다. 교회를 통해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목소리를 모아 찬양을 부르고, 성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성찬을 통해 잔치를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교회를 둘러싼 권위주의, 개교회 패권주의, 차별주의의 굴레를 벗겨 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반항(?)도 했을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고, 불평 섞인 말들을 토해 내는 모습들 말이다. 교회가 자연스레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리고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요즘이지만, 여전히 교회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나도 무언가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순간, 다시 마음은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침묵을 끝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교회에서만 보고 듣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내가 굳게 믿어 오던 일상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믿음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균열이 생길 때 비로소 새로운 신앙이 자라날 수 있는 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신앙의 새싹이 돋아나고, 믿음의 뿌리가 내리고, 소망의 잎사귀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자크 엘륄은 『의심을 거친 믿음』에서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믿음은 반드시 나를 비판적 거리에 위치시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세상, 나의 사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중략) 결국 믿음은 비판의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믿음 자신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각주:1]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은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엘륄의 말을 빌려 오면 '인도하는 것은 바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발걸음'이다.[각주:2] 믿음을 가진 이는 한곳에 머물 수 없다. 믿음은 우리를 투쟁의 자리로 인도한다.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겨 사랑의 자리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그 사랑의 자리는 인간의 경계와 기준을 뛰어넘어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는 글과 책으로, 누군가는 음악과 미술로, 누군가는 소셜미디어로, 누군가는 유튜브와 같은 영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언젠가 사그라들 것이라는 교회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희망을 품고 뭐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사랑했던 것, 소중하게 생각해 온 가치들을 허망하게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다시 일깨워 주는 단어들(정의, 평화, 해방, 사랑, 창조 세계)과 문제 제기들(세월호, 젠트리피케이션, LGBT, 페미니즘 등)을 접할 때마다 내 마음은 불타올랐다.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위해, 그리고 이 가치들을 부르짖을 때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할 것이다. 침묵을 깨는 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볼 때는 이를 자신과 다른 쪽의 가치를 향한 지지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 목소리를 낼 것이고, 세습을 당연시할 것이며, 총회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끊임없이 공격할 것이다. 이런 교회의 결정들에 부르짖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자리에서 소리치고 외칠 때, 언젠가 우리의 교회는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침묵을 끝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지금 하나님의 목소리를 대신 외치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화가 임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더 많은 목소리를 내는 당신이 되길, 내가 되길 바라며.

 

 

 

키디 / 선교하는 수도 공동체 『더불어 홀로』에 몸담고 있다. 책 모으는 걸 좋아하는 사람. 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교회 전도사다. 자신만의 공간에 단상을 남기고 감상을 나누며, 스스로의 이상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1. 자끄 엘륄, 『의심을 거친 믿음: 마침내 드러난』, 임형권 옮김, 대장간, 2013, 231. [본문으로]
  2. 같은 책 23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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