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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상

모두 선택할 수는 없을까?

by 조각모음_KIDY 2021. 1. 7.

  얼마 전 ‘작은 아씨들(2020)’이라는 영화를 봤다. 네 딸들 중 작가를 꿈꾸던 조(시얼샤 로넌)이 울면서 어머니한테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조가 이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영화에서는 결국 조도 여성으로서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그리려 했다는 부분에서 그 한계를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이런 감정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내 옆에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솔직한 마음으로 보였다. 물론 의지하며 함께 갈 사람이 꼭 배우자일 필요는 없지만, 조는 그 순간만큼은 배우자를 바라고 있었고 조를 바라보는 나도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조의 대사가 사무치게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이야기에서 조는 결혼을 하지만, 이야기의 작가인 조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결말을 보고 궁금했다. 조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작가가 된 이후에도 이따금 씩 외로움을 느꼈을까?

 

  여성 신학도 혹은 목회자로 살아갈 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크게 네 가지가 있다면 결혼, 아이, 공부, 목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중, 여성은 꼭 무언가를 취사 선택해야만 되는 것 같아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선택하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성차별적인 구조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거니까 못마땅하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봐온 것은 남자 교수들은 모두 결혼을 했고, 자녀도 있는데, 몇 되지 않던 여자 교수들은 대게 결혼을 하지 않았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건 본인의 선택이겠으나, 결혼을 하면 공부를 하고, 교수가 되는 길에 방해가 되어 선택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봤다. 자신이 원해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남성 교수는 없었으니 내 눈에는 이런 차이가 조금은 기괴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해외에 나가 공부를 하는 동안 백이면 백 아내가 내조를 해주고, 아이를 키웠다고 하니 남성들은 배우자, 자녀, 학업을 좀 더 쉽게 했으려나.

 

  시선을 돌려 교회를 보면 원치 않아도 내 결혼 문제를 걱정해주는 많은 사람을 만나곤 한다. 스스로 고민이라 이야기하지 않아도 ‘목회를 계속 하려면 목회자 남편을 만나야 한다,’, ‘아니다. 목회를 하지 않고 외조를 끝내주게 잘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로 본인들끼리 토론을 하곤 한다. 어떤 남성 장로는 좋은 여자 목회자들이 목회자 남편과 결혼해 사모로 남게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더니 나한테는 결혼하지 말고, 목사로 살라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내 미래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니 기분이 나쁜 일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남성 목회자에게 결혼을 하지 말고 목회를 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 봐서는 여성 목회자들에게 결혼이 고민거리이긴 한 모양이다.

 

  교계에서 여성 교수 정도를 제하고 신학하는 여성은 그저 남성 목회자와 만나 결혼해서 사모로 주저앉아버릴 사람, 결혼 후 목회를 계속하더라도 육아휴직이 없어 아이를 낳으면 그만둘 사람 정도인 듯하다. 그래서 결혼을 안 하거나 혹 아이를 낳지 않은 경우가 생기면, 이를 보고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이해하지 못하니 목회를 못 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어쩌라는 건지. 교회라는 곳은 여성이 목회하는 걸 아니꼬워하는 것 같다. 어처구니없는 소리와 따가운 시선의 무게를 감당하며 목회의 꿈을 간직하며 달려온 여정 속에서 가끔 내가 여성인 것이 목회하는 것에 걸림돌이 되는 것만 같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여성인 것이 한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남자였다면, 아니 차라리 나 대신 내 남자 형제가 신학을 했다면 좀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던 때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혼을 선언하는 여성 신학도들도 있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내 아이를 가지고 싶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의외로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 왜 놀라느냐고 물으니 “왠지 너는 결혼 같은 건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어.”라고 한다. 여성 신학도로서 해외에서 공부도 하고, 여성 목회자로 한국에서 멋진 목회를 하는 것이 꿈인 페미니스트라서 그런 반응을 보인 걸까? 아니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는 삶이 현실적으로는 어려워서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쩌면 가부장 사회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의 행복임을 강요받아서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인간이라면 당연한 삶이라 여기지만, 분명 강요되는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는 느리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 결혼이나 출산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니 원하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기도 하니까. 그러니 반대로 원한다면 선택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나는 공부와 목회에 대한 욕망만큼 내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품었다.

 

  ‘이 모든 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신학 하는 남성들에게 일과 사랑 모든 부분에서 성공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지는 게 당연하고, 자신이 원한다면 원하는 만큼 공부도 하고, 목회는 보통 기본이다. 반면 신학 하는 여성이 결혼, 아이, 공부, 목회를 다 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여성으로서 신학을 하려면 꼭 무언가를 포기해야 다른 것들을 겨우 이루어낼 수 있으니 그런 거겠지. 여성이 목회나 공부를 하려면 결혼을 하지 않는다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한다. 여성의 목회나 학업에 협조적인 배우자는 많지 않고, 교회 현장은 출산 휴가를 주지 않으니까. 그러니 결혼하고 아이도 가지려면 목회를 중간에 포기해야 하고, 아이가 크고 현장에 돌아오자니 보통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여성 목회자가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기왕이면 전부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공부하고, 좋은 목회를 열망하는 것만큼, 내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내는 것 역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니까. 목회, 공부, 결혼, 육아 이 모든 걸 해내기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이런 꿈을 같이 꾸어줄 파트너를 만나는 것부터 쉽지 않으니까. 내 학업, 목회를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당연히 기쁜 일이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 그러지 못한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남성 목회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 모든 것을 해낸 것에는 아내나 다른 가족구성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를 위해 상대방이 삶을 희생하는 건 바라지 않지만, 아니고서야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여성인 내가 어떻게 내 선택을 다 이룰 수 있을지 오늘도 고민이 된다.

 

 

  오늘도 같은 기도를 하다가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여성임에도 목회의 길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기를 원하는 기도하던 중에 말이다. 일상적으로 받는 차별에 무너지지 않게 되기를, 남성 목회자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내게 당연하지 않은 일로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이전도사 / 20대, 교회에서 사역하는 여성 전도사입니다. 신학하는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내는 모든 순간 역시 신학하는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글에 담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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